우리에게 분노하는 정치인이 필요한가

어제 존경하는 한 분과 식사하면서 “분노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샌더스와 트럼프는 둘다 분노하는 정치인이라고 말해 주었다. 한 사람은 진보를, 한 사람은 보수를 대신해 분노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분노하는 정치인이 적다. 

왜 시민이 분노하는 정치인을 좋아할까? 일종의 대리만족일거다. 

만족하지 못하는 정부, 기업 등의 사회시스템에 대해서 나 대신, 내 뜻을 실랄하게 욕해주고 싶다는 심리일 것이다. 일부 소수정당에서는 이런 분노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들은 대선에서는 실패한다. 샌더스 역시 돌풍은 있었으나 결국 힐러리에서 양보했다. 트럼프 역시 막바지에 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다면, 분노하는 정치인은 성공할 수 없는가? 

내 생각에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분노하는 정치인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는 분노하는 정치인은 성공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총선은 과거에 대한 평가, 대선은 미래 비전을 보고 투표한다고 한다. 미래 비전을 놓고 분노하기 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유권자를 설득한다는 것이다. 


2002년을 대선을 되돌아보면 병력비리 등 병풍보다는 수도이전 등의 미래공약과 이슈가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고 보고 싶다.


날씨도 더운데 분노하지 맙시다…^^

관련기사 : 트럼프 VS 샌더스…미국판 일베와 진보주의자 ‘화제’ (화이트페이버, 201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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